세월호 수업계획 아카이브

<세월호교실> 재난 워크숍에 가다

<세월호교실>에서 블로그를 시작합니다. 세월호교실과 관련된 활동과, 비단 한국뿐이 아닌 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난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첫 글은 <세월호교실> 소속 대학원생 연구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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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세월호 교실>의 편집위원과 조교로 이루어진 한 팀의 연구자들이 싱가포르로 출국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세월호와 관련해 진행한 연구를 해외 연구자들에게 소개하고 관련된 연구를 위함이었습니다.

저희가 참가한 워크샵의 제목은 <The Sociotechnical Construction of Resilience>이었는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복원성(resilience)의 사회-기술적 구성’ 정도가 됩니다. 복원성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한 사회가 재난이나 사건, 사고의 충격으로부터 얼마나 잘 견디는가,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하겠습니다. 평형수를 덜 채운 세월호가 쉽게 전복된 것과 같이, 복원성이 부족한 사회는 재난에 쉽게 노출되며, 또 어렵게 회복합니다. 한국처럼 반복되는 재난을 겪은 사회는 복원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사회적, 기술적 방법으로 도모해야 합니다. 재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적 역량을 기르고, 재난 상황에 견딜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하는 과정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복원성이 사회-기술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워크샵에 참가한 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은 모두 재난, 사람, 기술에 관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 모였습니다. 세월호와 같은 침몰사고부터 시작해서 건물 내 화재, 생물 종 감소, 가뭄, 홍수 등등 연구자의 숫자만큼 재난의 유형도 다양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에 진흙이 샘솟아서 주거지역을 몇 년째 잠식하고 있다는 믿지 못할 사례도 있었습니다. 배의 좌초부터 진흙탕 재난까지 예시는 정말 다르지만 사람과 기술을 통해 사회의 복원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 즉 어떻게 하면 재난에 더 잘 견디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관해 열심히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박 2일 간의 토론을 통해 다양한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고 있는 복원성의 회복을 위한 조건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재난 예방의 두 축인 사람과 기술 사이의 관계에 대해 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복원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재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과 문화(인적 요소)가 필요하고 적당한 기기와 인프라의 도입(기술적 요소)도 필요합니다만, 이 두 요소가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는 보통 관심에서 멀어지곤 합니다. 워크샵에서 만난 여러 연구들은 이 경계면에서의 노력을 두 요소의 상호작용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한 일본인 참가자의 연구를 예시로 들겠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 일본 정부는 방사능 물질의 확산을 시뮬레이션 하는 예견 시스템을 구축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을 때 이 시스템은 시민들을 피난시키는 데에 적당히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최첨단 시스템을 유지하고 신속하게 활용할 사람들의 역량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인력과 기술이 있더라도 이런 따로 국밥식 접근으로는 복잡한 재난 현장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총체적 능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정부 역시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2조원을 들여서 최첨단 재난 전용 통신망을 만든다고는 했지만, 중앙 부처가 이 기술을 실제로 활용하는 일선 소방관들과 해경과의 협의 없이 빠르게 사업을 밀어붙인 탓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복원성을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재난 현장에서 사람과 기술의 협업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둘째로, 대처가 잘못된 재난일수록 제대로 된 사고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물을 쏟게 된 과정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고 치명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일을 통해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같은 원리로, 재난 이후에 복원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고조사를 통해 사회의 어떠한 부분이 취약한지를 명쾌히 밝혀내야 합니다. 파나마의 가뭄을 연구한 한 미국 연구자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동안 파나마의 물 부족은 기후변화나 엘 니뇨와 같은 비정상적 자연현상으로 인한 재해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파나마 담수의 상당량이 운하의 막대한 선박 운송량을 감당하는데 소비된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리적, 기후적인 원인으로 일어나는 줄 알았던 가뭄이 실제로는 담수의 형평성 없는 사용 때문이라는 지식을 생산함에 따라 재난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해법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된 사고 조사를 통한 재난의 이해 없이는 올바른 해결책도, 높은 수준의 복원성도 얻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시입니다. 한국의 재난 보고서를 주제로 한 저희 팀의 발표 역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재난 보고서는 재난 이후 사고 조사의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서입니다. 재난 보고서를 읽으면 한 사회가 재난에 어떻게 대처했고 어떤 개선책을 세웠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재난 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복원성 회복을 위한 과정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희 팀은 한국 사회가 주요한 재난 이후에 발간한 보고서들을 검토하고 어떠한 부분이 부족한지 지적함으로써 복원성의 회복을 위한 사고조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재난 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통해 사회적 학습을 도모해야한다는 점입니다. 높은 수준의 복원성은 고위 관료들이나 기술자들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재난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각이 나름의 방식으로 재난을 기억하고, 교훈을 얻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고민하는 학습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규모의 학습은 물놀이를 조심하자거나 낙타를 피하자는 식의 일시적인 ‘안전문화’ 캠페인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민들이 안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공론의 장이 필요합니다. 재난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유통되는 과정을 통해 시민 사회가 사회적, 기술적 구조 안에 녹아있는 위험을 인지하고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습니다. 재난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이러한 집단적 학습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시민사회의 전문가, 비전문가가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재난에서 배울 점을 발굴하고 유통시킬 수 있습니다. 재난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하자는 <세월호 교실>도 이러한 시도 중 하나입니다. 싱가폴 워크샵에서는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Disaster STS network(http://disaster-sts-network.org/)라는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있는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의 재난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모으고 연구자들 간의 교류를 증진하겠다는 포부로부터 재난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이들의 강한 신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교실>도, Disaster STS network도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시민사회의 역량을 기르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기도 했습니다.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보다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온 여행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2년이 넘는 시간 긴 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워크샵에서 토론한 복원성 회복의 세 가지 요소를 돌이켜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직접 장갑을 살 정도로 영세한 소방관들에게 뜬금없이 소방로봇을 권하는 사회, 재난의 공식 조사기관인 세월호 특조위가 예산 타박을 받고 문을 닫아야만 하는 사회, 정보공개 성과를 자랑하면서도 대통령의 7시간은 꽁꽁 숨기는 정부를 가진 사회가 재난으로부터 과연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엄청난 참사 이후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상황에 절망스럽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다는 바로 그 느낌 때문에 <세월호 교실>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꾸준한 시도는 더욱 절실합니다. 세월호가 수년에 걸쳐 켜켜이 쌓인 원인들로 인해 전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역으로 이를 해결하는 길이 그 수많은 원인들을 하나씩 규명하고 차근차근 해결하는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20여 년 동안 빠져나간 평형수를 2년 만에 채울 수는 없습니다. 복원성을 회복하는데 필요할 긴 시간 동안 우리가 세월호의 교훈을 기억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재난으로부터 배우기 위한 마지막 조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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